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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예술

X-JAPAN, 엑스 재팬, 보고 싶은 히데, 토시, 요시키 멤버들

by YU2EVER 2024. 2. 19.

 

우리나라에 가공할만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비주얼 록 밴드

멤버

요시키(YOSHIKI, 드럼, 피아노. 1965~)

토시(Toshi, 보컬. 1965~ )

파타(PATA, 기타. 1965~ )

히스(HEATH, 베이스. 1965~ )

스기조(SUGIZO, 기타, 바이올린. 1969~ )

히데(HIDE, 기타. 1964~ 1998)

타이지(TAIJI, 베이스. 1966~2011)

 

 

 

2011년 10월 28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 엑스 재팬(X JAPAN)

 

2011년 10월 28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1만 5000석이나 되는 좌석 을 꽉 채우는 저력으로 엑스 재팬의 관심과 인기를 증명해 냈다.

이미 히데(HIDE), 타이지(TAIJI)도 없고, 한차례 내한공연을 취소한 이력 까지 있던 터였지만 엑스 재팬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일본 문화의 제재의 강도가 심했던 시절 지하에서 프로젝터를 돌리며 숨죽인 함성을 내뿜던 간절함의 해갈이었기에, 그 만남이 가지는 의미가 여느 아티스 트보다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엑스 재팬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밴드다.

일본 음악을 넘어 록의 우상으로 손꼽히며 빽판의 일정 비율을 도맡았고, 반대로 과장된 보도를 통해 왜색의 주동자가 되기도 했다.

이런 요인 탓에 많은 이의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했고, 어렵게 만난 동호회 사람들과 조심스럽게 팬덤을 공유해야만 했던 향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이 있는 이들에게 엑스 재팬의 내한은 음악을 넘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매개체이자 현실에 억눌려 있던 갑갑함을 오래간만에 해방시켜 주는 탈출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BLUE BLOOD 2002

 

이들은 예전의 엑스(X) 시절을 통해 인디즈 시장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음반을 내기 위해선 인디 시절 인기를 토대로 메이저 레코드사와 계약해 금전 지원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요시키 (YOSHIKI)는 자주 레이블인 를 설립하고 인디즈 회사로 메이저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실 계약을 제의한 레코드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립을 했다는 게 맞겠다.

소꿉친구였던 토시(Toshi)와 함께 디만세아(Dementia)의 타이지, 다음 해에 미용사로 전입하려던 요코스카 샤벨 타이거(Yokosuka Saver Tiger)의 히데를 영입했고, 레코딩에 도움을 줬던 파타(PATA)까지 불러 들였다. 그렇게 모여 <紅(홍)>이 수록된 앨범 1998 을 발표해 제작 앨범 전량을 완판 시키며 메이저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 를 이루어 낸다. 이후 요시키는 이 레이블을 통해 루나 씨(LUNA SEA)나 글레이(GLAY) 등을 발굴하여 자신의 라인 설립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 성공을 계기로 와 계약을 맺고, 전성기의 두 축을 이루는 1989와 1991을 선보였다.

<ENDLESS RAIN>, <WEEK END>, <X> 등의 명곡은 모두 이때 완성 된 곡이었다. 1992년에는 3일 연속 도쿄돔 공연을 개최해 12만 명 동원에 성공했다. 과장된 메이크업과 퍼포먼스, 빈번했던 미디어 노출에 호불호가 갈리며 당시 해외 뮤지션들만 공연하던 곳을 채울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았 지만 이들은 코웃음 치듯 무난히 만석을 만들어내며 음악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1992년에 치른 엑스 재팬의 단독 공연은 바로 이 도쿄돔 3 Days 가 유일 했기 때문에, 활발하지 않은 라이브 활동을 비판하는 의견도 많았다.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
디르 앙 그레이(Dir en Gray)

 

이들의 승승장구와 함께 인디 신과 비주얼 록 필드는 엄청난 탄력을 받게 되었다. 멜로딕 스피드 메탈은 일본 정서에 맞는 선율로 감싼 독자적인 스타일은 본국과 서양의 조합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고, 앞서 언급한 글레이 나 디르 앙 그레이(Dir en Gray),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의 뿌리가 되어 메인스트림 히트를 이끌었다. 이처럼 단순한 밴드를 넘어 록 신의 베리에이션을 넓인 선구자 역할 또한 겸하고 있었다.

그저 요란한 화장을 한 베테랑 로커에 그치기에는 이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릇이 너무 컸다.

 

 

 

타이지(TAIJI, 1966~2011)

 

 

그렇게 막힘 없이 질주했던 액스 재팬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도쿄돔 공연을 마지막으로 밴드를 떠한 베이시스트 타이지의 공백이 컸다.

당시에는 음악적 견해가 이유라고 말했지만, 훗날 요시키에 의해 해고 당했음을 고백하며 그의 독단적인 태도를 수면 위로 올렸다.

<여담으로 타이지는 음악 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도 사실상 세션에 가까운 취급을 당했다. 그런 멤버가 수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니 요시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탈퇴 후 일주일 만에 라우드니스 (LAUDNESS)에 합류하지만, 불행한 개인사 후 2011년 7월 17일에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미리 작업해 두었던 1993를 통해 그럭저럭 활동을 이어갔지만, 투어 중 요시키의 몸 상태가 악화되면서 이후 활동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렇게 위태롭게 활동을 이어갔던 이들은 1997를 마지막 앨범으로 남긴 채 12월 31일 도쿄돔 공연을 끝으로 해산했다.

 

 

 

히데(HIDE, 1964~1998)

 

그렇게 엑스 재팬의 이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즈음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히데의 죽음이었다. "PSYCHEDELIC VIOLENCE CRIME OF VISUAL SHOCK"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쓴 멤버로서, 사실상 비주얼계의 시초로 인정 받는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많은 팬들을 충격과 슬픔으로 내몰았다.

얼터너티브와 펑크가 혼재된 강렬한 음악, 시대를 앞서갔던 스타일링 등으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펼치며 강력한 팬덤을 몰고 다녔던 그였다.

엑스 재팬에서도 타이지와 함께 핵심 중의 핵심 멤버였기에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분명 일본 음악계를 지탱 하는 뚜렷한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긴 시간이 흐른 뒤, 2007년 재결성을 거쳐 염원해 왔던 내한공연을 치렀다.

그동안 루머와 논란들을 말끔히 해소하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구절을 떠 올 리게 만든 액스 재펜. 일본 음악을 접한 사람들 대다수가 그 시작을 엑스 재팬과 힘께 했고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가요에 많은 영향을 준 밴드이기도 하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들은, 이제야 그 짙은 화장을 지우고 진심으로 팬들과 마주하며 뒤늦게 옛날의 지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있다. 모든 고난을 극복한 그들에게 여전히 이 한마디는 유효하다.

"We are th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