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팝의 지형도를 바꿔버린 신성, 우타다 히카루
본명: 宇多田ヒカル(우타다 히카루, Hikaru Utada)
추천 앨범: First Love 2002
1983년 1월 19일, 뉴욕 맨해튼 출생
1998년 데뷔
창법, 스타일, 프로모션 전략, 그야말로 새로움의 일색이었다. 데뷔 당시에 스포트 라이트를 독점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만큼 천재적이었다.
그만큼, 이 앨범은 그전에 없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일본 대중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모두가 일본인을 위한 흑인음악에 골몰할 때, 원형 그대로를 보존해 전파 했던 그 행보는 이제는 전설에 가깝다. 15세 어린 나이인데도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었던 한 아티스트의 출발점은 이미 남달랐다.
우타다 히카루(UTADA HIKARU), 그의 이름은 꽤나 제이팝 역사에 큰 자리를 차지한다. 단번에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역대 앨범 판매량 1위라는 기록이다. 2014년 기준 800만 장에 육박한 1999의 판매량은 개인뿐 아니라 일본 시장의 규모를 나타낼 때 쓰는 상징적인 수치이기도 하다.
이 숫자가 증명하듯, 등장 자체가 다른 기성가수들에게는 전무했던 임팩트를 지니고 있었다.
그루브를 비롯한 둔탁한 비트와 여태 들어본 적 없던 바이브레이션과 음색, 첫 싱글 <Automatic/time will tell>1998은 이국적인 느낌으로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타다 히카루는 정통 알앤비를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배가 되었다.
또한 그는 송라이터이기도 헸다. 데뷔 앨범 타이틀과 동명인 1999 는 그녀의 특출함을 엿볼 수 있는 대표곡이기도 하다.
最後の キス は
(당신과의 마지막 키스를 담배 향이 났어요)
ニガ くてせつない香り
(씁쓸해서 아련한 향기)
明日の今頃には
(내일 이맘때쯤에)
あなたはどこにいるんだろう
(당신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誰を想ってるんだろう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You are always gonna be my love
(당신은 언제나 내 사랑으로 남을 거예요)
いつか誰かとまた恋に落ちても
(언젠가 누군가과 또 사랑에 빠진다 해도)
I'll remember to love
(사랑하는 법을 기억할게요)
You taught me how
(당신이 가르쳐준 그 사랑)
You are always gonna be the one
(당신을 언제나 기억할 거예요)
今はまだ悲しい love song
(아직은 슬픈 이 사랑의 노래)
新しい歌 うたえるまで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立ち止まる時間が 動き出そうとしてる
(멈췄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動き出そうとしてる 忘れたくないことばかり
잊고 싶지 않은 일이 너무 나도 많아요.
明日の今頃にはわたしはきっと泣いてる
(내일 이때쯤이면 난 울고 있겠죠)
あなたを想ってるんだろう
(당신을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You will always be inside my heart
(당신은 언제나 내 가슴속에 있는걸요)
いつもあなただけの場所があるから
(당신만을 위해 자리를 남겨 둘게요_)
I hope that I have a place in your heart too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을 기억할게요)
<First love> Utada Hikaru(우타다 히카루)


2023년 넷플릭스 드라마 <하츠코이, First Love>는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 1999를 주제로 한 일본 드라마로 넷플릭스에서 인기가 상당했던 드라마인데 드라마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First Love 음악이 드라마의 완성도와 몰입감을 높이며 세기를 넘어 음악성을 다시 한 번 인정받게 되었다.
십 대 중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서. 외유내강의 보컬과 맞물려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이 노래를 통해 대중은 이 뮤지션의 엄청난 재능을 알게 됐다.
모두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상상하지도 못할 나이에 구사했던 사실에 일본 열도는 열광을 했다.
우타다 히카루의 바탕이 되는 것은 미국에서 자라며 접한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와 나인 인치 네일즈(Nine Inch Nails), 프린스 (Prince)등에게 영향받아 가꿔온 탄탄한 음악적 토양이었다.
이와 함께 십 대 초반부터 음반을 발표하며 조금씩 실전에 대한 감각을 키운 것도 한몫했다는 생각이 든다. 흔치 않은 조기교육은 그렇게 선천적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 되었다.

데뷔 후 우타다 히카루의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면서 주목을 끌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엔카 가수 후지 케이코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생활 역시 많은 이의 관심사에 놓였다.
일본 열도에 돌풍을 일으킨 10대 싱글 가수 우타다 히카루가 알고 보니 일본 음악계의 레전드 후지 케이코의 딸이었고, 미국 맨해튼에서 자라 음악을 하던 중 우연히 한 디렉터의 눈에 띄어 일본 데뷔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스토리는 누구라도 관심을 끌만한 소재였다. 음악 잡지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의 거의 모든 매스컴이 그녀에게 관심이 쏠렸고, 이러한 취재 열풍에 대중 또한 그의 이야기에 열광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타다 히카루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복합적이다.
개인의 천재적인 능력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서사들, 일본의 거품은 꺼졌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던 소비욕구들. 이것이 맞물린 배경을 기반으로 뿌리 깊게 남아 있던 영미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일본에서도 이런 세련된 음악을 한다'.
'일본에도 이런 아티스트가 있다'. 는 자부심으로 우타다 히카루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져 갔다.

꾸준히 활동을 해오던 그녀는 2010년 8월 9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활동 중단을 알리며 휴식기를 가지데 된다. 아티스트로 살아온 지난날을 잠시 잊고, 하나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적응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끊임없이 자신을 어필하고 보여 주어야 하는 스트레스와 어디든 따라다니는 매스컴과 파파라치들, 생각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사망, 스타로서의 삶은 익숙하지만 인간으로서 삶은 서툴렀던 그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택해야만 했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틀간 열린 마지막 공연 는 64곳의 영화관에서 1만 7천 명이 지켜보고, 유스트림(Ustream)을 통한 실시한 스트리밍 중계는 무려 92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많은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016년 4월 NHK TV소설 주제곡인 <花束を君に, 꽃다발을 그대에게로> 5년 4개월 만에 복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활발한 음악 활동과 SNS를 통해서 팬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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