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여자 아이돌의 원조
모닝구 무스메(モーニング娘, Morning Musume)
'외모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지도 모르겠고, 귀여운 애들 몇 명은 보이더라.
인원이 되게 많더라. 약간 오타쿠 같은 성향의 팬들이 많더라. 그리고 멤버 들이 학교처럼 졸업 같은 걸 한다더라' 솔직히 말해 기본적으로 이런 무시나 비아냥을 깔고 시작하는 것이 국내 대중이 말하는 일본 여자 아이돌의 이미지 다. 지금이야 AKB 그룹을 지칭하는 말에 더 가깝겠지만 결정적으로 이런 오해 아닌 오해를 제공한 것은 바로 2000년 초반을 장악했던 모닝구 무스메 라고 할 수 있다.
<X-Factor>에 각각 참가했다가 사이먼 코웰의 권유로 팀을 만든 뒤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원 디렉션(One Direction)은 사실 모닝구 무스메의 시작점을 떠오르게 하는 사례다. 1997년 <ASAYAN>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개최한 샤란 Q여성 록 보컬리스트 오디션에 참가해 떨어진 인원들을 추슬러 결성시킨 것이 바로 그룹의 시작점 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에게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프로모션 싱글인 <愛の種 사랑의 씨앗>1997 5만 장을 5일 동안 멤버들이 직접 팔아 완판 시켜야만 데뷔를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활동을 시작했고, TV는 이 고된 분투기를 다룬 내용을 방영하며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것이 대중의 큰 관심과 대성공을 일으키며 인기 상승에 직접 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었고 목표 또한 달성해 내며 메이저 진입에 성공했다.
이후 팀 내 경쟁과 갈등을 자극적이고 감동 있게 계속해서 내보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현재 유행 중인 리얼리티 예능의 시초 격이기도 하다.



모닝구 무스메가 도입했던 졸업 시스템은 같은 멤버의 지속적인 노출로 인한 피로감을 상쇄시키면서, 관련 이벤트를 만들어 팬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상업 성을 극대화 시켰다. 이후 AKB48을 비롯한 일본 아이돌 그룹을 넘어 국내 그룹인 애프터스쿨 같은 그룹도 이를 적극 도입해 새로움을 꾀했다.
당시 소속사인 와 프로듀서인 층쿠는 탁월한 안목으로 모닝구 무스에 2기의 야구치 마리(矢口真里),3기의 고토 마키 (後藤 真希), 4기의 카고 아이(加護 亜依)와 이시카와 리카(石川 梨華) 등 캐스팅 된 멤버마다 대스타로 성공을 했다. 인기 멤버가 탈퇴하면 기세가 사그라질 것이 라는 우려와 달리 신 멤버 오디션이 거듭될 때마다 화제성이 더해져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5기에 와서는 예전의 날카로움과 유니크함이 사라지고 캐릭터 확립 에서 지지부진 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침체기인 하프로프를 짊어지고 온 것이 군계일학의 다카하시 아이(高橋 愛)와 초창기의 비난을 모두 이겨 내고 실력으로 인정받은 니이가키 리사(新垣 里沙)라는 것을 보면, 2000년대 초반의 반짝이던 감각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유닛이라는 개념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다양한 조합을 통해 개성을 어필 하며 멤버는 하나의 그룹 아니면 솔로로 활동한다는 기존의 틀을 깨뜨렸다.
탄포포(タンポポ), 미니모니(ミニモニ), 풋치모니(プッチモニ), 산닌 마쯔리(三人祭) 를 포함해, 매년 모든 하로 프로젝트 멤버를 모아놓고 다양한 조합을 만들었던 셔플 유닛까지, 콘셉트에 대한 발상은 거의 천재적인 수준이었다.
이를 통해 다소 인지도가 낮았던 멤버들에게도 기회가 가고 인기를 끌게 되었고, 각 멤버들의 사기도 높일 수 있었다. 소외되는 멤버들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고 캐릭터 쇼에 가까운 유닛 편성은 여러 제작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최대 히트곡이라 하면 역시 최초의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LOVE マシーン(LOVE 머신)>1999을 들 수 있다. 고토 마키의 영입과 함께 선보인 이 곡은, 경기 침체기를 겪는 일본 에게 힘이 되는 응원성 가사와 쉬운 안무로 대중에게 어필하며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 을 이끌어냈다. 이후 현영이 리메이크했던 <恋愛レボリューション21(연애 Revolu tion 21)> 등으로 유명세를 이어 나갔고, 아베 나츠미(安倍 なつみ)의 졸업 싱글 <사랑이 있다면 IT'S ALL RIGHT>2004이 콘서트 엔딩을 장식하는 주요 트랙으로 자리 잡았다.
<リン·ジョナントブルー(Resonant blue)>2008는 멤버, 팬,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후반기 명곡이다. 당시 매너리즘과 자기 복제의 수렁에 빠져 있던 층쿠에게서 나온 불꽃같은 이 곡은 인기의 하락과 관계없이 퍼포먼스와 비주얼 측면에서 완숙함을 보이고 있던 플라티 나기의 절정을 만들어 냈다. 참고로 플라티 나기 때의 층 구는 우스갯 소리로 악마와 계약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곡들이 많았다.
이후 2010년과 2011년을 거치며 중심과도 같았던 다카하시 아이를 포함한 5,6,7기 멤버들의 대거 졸업과 9,10기의 가입이 맞물렸고, 이로 인해 그룹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재단장하게 되었다. 리더인 미치시게 사유미를 필두로 여러 이벤트 와 함께 다시 판매량을 반등시켰고, 지금까지 발표한 56장의 싱글은 모두 데일리 10위 내 랭크라는 엄청난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모닝구 무스메는 이런저런 사고도 많았는데 갑작스러운 증원에 의한 1기와 2기의 대립과 과다한 스케줄로 인한 혹사, 심증만 있던 아이돌의 연애금지라는 사안에 대한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야구치 마리는 배우 오구리 슌(小栗 旬)과 스캔들로, 후지모토 미키(藤本 美貴)는 개그맨 쇼지 토모하루(庄司 智治)와 스캔들로 졸업 콘서트 없이 탈퇴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아이돌은 팬들과 유사연애대상이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또한 카고 아이는 자신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흡연 파파라치 사진이 포착되며 한차례 물의를 일으켰고, 이후에도 불륜과 자살미수 등으로 일본 연예계에 크나큰 물의와 충격을 안겼다. 다나카 레이나(田中れいな)와 카메이 에리(亀井 絵里)는 본의 아니게 한국인을 비하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혐한 그룹 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는 등, 개인의 자아가 미처 형성되기 전에 시작된 가수 생활은 미성숙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러 졸업 멤버들의 결혼과 출산 소식은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그들의 전성기가 꽤 오래전이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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