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과 예술

J팝 여왕 아무로 나미에 Amoru Namie (安室奈美恵), 아무로 나미에 근황은?

by YU2EVER 2024. 2. 14.

제이팝의 여왕 아무로 나미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제이팝의 여왕. 지금도 진화를 거듭하는 현재 진행형 디바. 솔로 여가수라는 영역에서는 물론, 일본 대중음악사 전체를 조망해 보더라도 아무로 나미에 (安室奈美恵)라는 이름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제이팝 여왕의 위력은 여전하다.

순식간에 스테이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는 현재도 일반 여성의 동경을 받고 있고, 한 발 더 나아가 국제적인 영향력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수많은 여가수의 레퍼런스 역할을 본의 아니게 맡고 있는 그녀의 커리어는, 화려함 만큼이나 고난 또한 많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룹 시절까지 합하면 데뷔 32주년을 훌쩍 넘긴 그녀다. 솔로 경력은 1995년이 시작이지만, 그전에  1992년~1995년까지 훗날 아이돌 그룹 맥스(MAX)가 될 멤버들과 함께 슈퍼 몽키즈(Super Monkeys)로 무대에 섰던 때가 있었다.

아무로 나미에는 부모님이 4살 무렵 이혼을 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하고 어려웠는데 초등학교 5학년때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지금으로 치면 연기 및 노래 학원)에 친구 따라 놀러 갔다가 교장 마키노 마사유키에게 스카우트가 되었고 수업료를 낼 수 없었던 아무로 나미에에게 특별우대생 자격 으로 받아들여 무료로 다닐 수 있었다. 교장 마키노 마사유키의 혜안과 선견지명은 가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로 나미에 with 슈퍼 몽키즈(安室奈美恵 with Super Monkey's) 이름의 싱글 가 70만 장을 넘는 히트를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솔로 가수로서 활동할 토대를 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첫 번째 전환점이자 인연이라고 할 코무로 테츠야(小室 哲哉)와 만남이 성사되어 를 새로운 거처로 결정하게 된다. 아무로 나미에가 출연한 광고 를 보고 단번에 어프로치를 감행했을 정도로 관계자들 사이에서 스타성만큼 은 정평이 나 있던 상태였다.

대중음악계를 주무르던 전자음악 거장과 잠재력과 스타성으로 무장한 소녀의 만남. 그것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냈다.

이적 후에 첫 싱글이었던1995가 단번에 밀리언을 달성했고, 뒤이어 <Don't wanna cry>1996, <You're my sunshine>1996 등이 연속 100만장 이상의 인기를 이어갔다.

 

 

 

SWEET 19 BLUES 1996는 3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아무로 나미에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갈색 머리와 태닝 한 피부, 미니스커트, 통굽 부츠로 대표되는 이른바 '아무라(アムラ)'라는 신조어가 아무로 나미에를 둘러싼 사회현상의 가장 적합한 예일 듯하다. 아무로 나미에는 당시 10대 20대 소녀들의 패션 리더가 되었고 여자들은 아무로를 따라 하면서 아무로의 스타일은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결혼 발표 기자회견 때 남편 SAM과 AMURO NAMIE

 

1997를 통해 발라드에서도 큰 성공을 하고 이 싱글 앨범은 200만 장이 넘게 팔리며 현재에도 아무로 나미에 발라드 노래 중에서는 상위권에 올라가 있다. 그리고 이 무렵 결혼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아이돌 로서 행복과 인간으로서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이전 사례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과감한 행보이기도 했다. 이듬해 처음으로 휴지기를 가지며 아들을 출산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1999 의 발표일이었던 3월 17일, 자신의 어머니가 숙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 났다. 이 소식에 일본 열도는 큰 충격에 빠졌고, 공황상태에 빠진 아무로 나미에도 긴급하게 모든 활동을 정리했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2주가 지나기도 전에 다시 활동을 재기하며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당시 충격이 너무 커 모든 걸 내려놓고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마음도 간절했지만, 이때의 자신을 다잡게

한 것은 바로 아들이었다고 훗날 밝혔다. 어머니만 가질 수 있는 강한 모성애,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한 그녀였기에 가질 수 있었던 복귀의 원동력이었다.

남편 SAM과 아들 丸山晴人(마루야마 하루토)

 

1997를 통해 발라드에서도 큰 성공을 하고 이 싱글 앨범은 200만 장이 넘게 팔리며 현재에도 아무로 나미에 발라드 노래 중에서는 상위권에 올라가 있다. 그리고 이 무렵 결혼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아이돌 로서 행복과 인간으로서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이전 사례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과감한 행보이기도 했다. 이듬해 처음으로 휴지기를 가지며 아들을 출산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1999 의 발표일이었던 3월 17일, 자신의 어머니가 숙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 났다. 이 소식에 일본 열도는 큰 충격에 빠졌고, 공황상태에 빠진 아무로 나미에도 긴급하게 모든 활동을 정리했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2주가 지나기도 전에 다시 활동을 재기하며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당시 충격이 너무 커 모든 걸 내려놓고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마음도 간절했지만, 이때의 자신을 다잡게 한 것은 바로 아들이었다고 훗날 밝혔다. 어머니만 가질 수 있는 강한 모성애,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한 그녀였기에 가질 수 있었던 복귀의 원동력이었다.

 

 

 

아무로 나미에의 근황은?

시부야에서 목격된 아무로 나미에
오키나와 에서 아무로 나미에

 

아무로 나미에가 매매 했다는 교토의 고급 맨션